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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동안 솔레크 시민들은 내가 어느 편인지 알고 싶어 했다. 상관을 쏘고 도망친 탈영병인지, 아니면 폭탄 테러에 휘말려 불시착한 제국군인지 확실히 하려고 들었다.

  그 무렵에는 함선과 정거장을 겨냥한 폭탄 테러가 많이 일어났다. 일전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진 셈이었다. 제국을 향한 저항군들의 명백한 선전포고였는데 대다수가 라리사 회담의 영향을 받은 것이었다. 폭발에서 살아남은 제국군들이 분리된 데크를 타고 떠돌다 다른 함선에 구조되거나 인근 행성에 불시착하는 일이 종종 뉴스에 나왔다. 나는 뉴스에 나오지는 않았지만, 솔레크 시민들 중에 나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듯했다.

  3923년 9월 3일, 내가 근무지를 옮기고 솔레크 시로 돌아왔을 때, 콘스탄틴은 집안에서 신문을 읽고 있었다. 그것은 에스클린이 전해준 사실이므로 정말로 그가 신문을 읽고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나는 버스에서 내린 후 에스클린의 집으로 향했다. 이미 소식을 전해 들었는지 그녀는 내가 올 것을 알고 있었다. 나는 함선을 옮겼다고, 이곳에서 근무하게 되었다고만 말했다. 외젠과 만나고 싶다고 하자 그녀가 전해주겠다고 대답했다. 그래서 에스클린이 곧장 콘스탄틴의 집으로 향했던 것이다.

  해가 막 지고 있었고, 타오르는 노을이 펼쳐진 지평선을 따라 땅거미가 올라오고 있었다. 바위에서는 희미하게 젖은 냄새가 났다. 파파차 협곡으로 빠지는 길을 걸어 올라가다 말고 의자에 앉은 노인을 보았다. 그는 여전히 거기 있었다. 그가 나를 쳐다볼 때까지 기다린 후, 나는 손가락을 꼬았다. 노인은 잠깐 동안 나를 보지 못한 척 했지만, 곧 같은 모양으로 손가락을 꼬아주었다. 용기를 얻은 나는 그에게 다가갔다. 그의 품에 안긴 분홍색 피부를 가진, 주름이 자글자글한 강아지를 내려다보았다. 가까이서 보니 강아지는 피부가 벗겨지거나 병에 걸린 게 아니었다. 그냥 그렇게 생긴 것뿐이었다. 그러자 더는 그 개가 흉물스럽거나 징그럽게 느껴지지 않았다.

  “이름이 뭔가요?”

  개를 내려다보며 내가 물었다.

  노인이 무뚝뚝하게 대답했다.

  “킴.”

  나는 노을이 멋지다고 말을 걸었다. 노인은 퉁명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더니 하루 중에서 가장 멋진 때라고 말했다. 해가 지면 모든 게 끝난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고, 하루가 조금이라도 남아있는 한 멋진 노을을 볼 수 있다고 했다. 그렇군요. 내가 대답했다. “정말 그래요.”

  오르막길을 마저 올라 파파차 협곡으로 갔다. 벤치가 있었고, 사물이 훤히 보였다. 낡은 팻말이 있었는데 ‘파파차’라고 쓰여 있었다. 나는 벤치에 앉아 광활한 풍경을 바라보며 콘스탄틴을 기다렸다. 구름이 흘러가는 것을 지켜보는 동안 그에게 할 말을 정리했다. 나는 콘스탄틴에게 할 말을 아주 많이 가지고 있었다. 콘스탄틴이 협곡으로 올라왔을 때,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가 다시 앉았다.

  콘스탄틴이 말했다.

  “안녕.”

  “안녕.”

  내가 대답했다.

  우리는 벤치에 앉아서 풍경을 바라보며 대화를 나누었다. 새 떼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다른 주제로 넘어갔다. 콘스탄틴도 에스클린에게 상황을 전해들은 것 같았다. 그는 내 선택에 확신이 있는지 물어보지는 않았지만, 잠시 침묵하다가 솔레크 시를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었다. 그것은 내가 삶에서 찾아낸 답에 대한 우회적인 질문이었다. 나는 새빨간 지평선을 바라보았다. 노을이 진 하늘 때문에 뒤집어진 두 개의 땅덩어리가 서로 마주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나쁘지 않아. 할 일도 많을 것 같고.”

  내가 대답했다.

  나는 콘스탄틴에게 괴로웠던 예전 이야기를 함부로 꺼내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가 떠난 뒤의 일들, 그가 내 삶에 있었다가 갑자기 사라지고 말았던 짧은 순간마다 느꼈던 감정에 대해서는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콘스탄틴을 영영 잃어버렸다고 생각했을 때, 실제로 나는 절망했었다. 지난 일 년 동안 나는 내내 절망한 채로 살았다. 매사 갈팡질팡하면서 걸핏하면 모든 것을 선택지로 받아들이고 통제하려 들었다. 극복했다고 생각했지만, 전혀 극복하지 못했다. 그의 죽음은 설령 실행되었는지 불확실할 때조차 내게 너무 큰 충격을 안겨주었다. 한동안 나는 콘스탄틴을 생각하면 마음이 무척 아팠다고 말했다. 지금은 아니지만, 배신감을 느꼈다는 이야기도 했다. 그 말을 할 때, 나는 그가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 두려워서 자신감을 잃고 지평선을 바라보았다.

  나는 괴로움을 이겨내기 위해 콘스탄틴을 이해해보려고 했던 나의 역사에 대해서도 부끄러워하며 털어놓았다. 세상을 이해해보려고 노력했지만 잘 되지 않았다고…. 왜 사적인 감정은 항상 사유 속에 존재할 수밖에 없는지, 왜 항상 선택은 지나간 후에야 그것이 선택이었노라고 알려주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언젠가 그랬던 것처럼 콘스탄틴은 내 말을 주의 깊게 들었고, 고개를 끄덕였고, 때로는 자신의 이야기를 했고, 질문했다. 그러면 나는 대답했다. 우리는 그런 식으로 우리 사이의 공백을 메워보려고 노력했다. 그러는 동안 서서히 해가 저물었다.

  하늘이 붉고 푸른 빛깔로 물들며 보라색과 분홍색으로 얼룩지기 시작했을 때, 나는 용기를 내서 머리카락을 넘겨 두 귀를 드러냈다. 콘스탄틴은 내 귀를 바라보았고, 내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이해했다. 나는 아주 오래 전에 콘스탄틴이 어울린다고 말해주었던 오팔 귀걸이를 하고 있었다. 가르강튀아가 붕괴되기 시작했을 때, 기울어지는 복도를 내달려 서랍 속에서 꺼냈던 바로 그 귀걸이였다.

  모든 것이 결국 나로 돌아온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우주를 압축하듯, 세계를 접어 넘기듯, 삶의 원점으로 돌아오는 일 말이다. 나는 한 번 그것을 이미 경험했었다. 그 폭력, 죽음, 학살, 전쟁과 착취, 고통, 눈물, 배신의 얼굴도 나였고 정원 속을 거닐며 누군가를 기다리던 얼굴도 나였다. 한순간도 내 의지대로 삶을 꾸려가본 적 없다고 절망할 때도 있었지만, 결국은 살아갔다. 내가 선택한 아주 개인적인 삶을 믿었기 때문이다. 그 누구도 내게 콘스탄틴을 강제한 적 없었다. 내가 그를 선택하기를 원하는 사람도 없었다. 하지만 내 선택에는 언제나 정원의 기억이 있었다.

  그래서, 나는 용기 내어 불렀다. 코스챠.

  그 벤치에 앉아서, 노을이 저무는 것을 지켜보며 우리가 아주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대화를 나누어보는 것은 정말 오랜만의 일이었다. 나는 콘스탄틴에게, 내가 답을 찾지는 못했다고 했다. 그 시기를 영영 놓친 것 같다고, 어쩌면 나는 더는 답을 찾아서는 안 될 인간이 되어버렸는지도 모르겠다고 했다. 콘스탄틴은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지만, 내가 평생 이 삶에 대해 질문하겠다고 했을 때는 무엇을 질문하며 살아갈 것이냐고 조용히 물어보았다. 무엇이 올바르고 선한지… 나는 그 질문에 조그만 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이 부끄러운 삶을 지속해나갈 수 있는지 말이야. 새들이 날아오른 건 그 무렵의 일이었다. 수천 마리의 새들이 일시에 날개를 펼치고 협곡 사이에서 화살처럼 솟구쳐 올랐다. 바람을 일으키면서 까만 깃털을 흩날렸다. 하늘에 구멍을 내는 것처럼 솟구쳐 오르면서 세상을 압도했다.

  새들이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처럼 높이 솟아올라 한동안 창공을 배회할 때, 우리는 말없이 하늘을 바라보았다. 나는 마음속의 캄캄한 냄새가 사라진 것을 느꼈다. 마지막까지 진득하게 눌러 붙어 있던 어떤 형태 없는 권력이 아래로 주저앉고, 가라앉았다고만 생각했던 누군가의 이름의 힘이 돌아온 것을 느꼈다. 그것은 빛처럼 어둠을 배제하고 내 곁을 지켜주었다. 나를 인간으로 남도록 만들어주었다. 내 의지대로 선택해서 남겨둔 힘이었다. 싸샤. 그 애가 나지막이 불렀을 때, 그 사실을 알았다. 그 힘에 이끌려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그 애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코스챠에게 사랑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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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1
KakaoTalk_20190920_225656616.jpg

안녕하세요 파고님...

제가.....너무 늦었죠......

이 글을 3달 이상이나 잡고 있었군요...

다음부터 욕심을 부리지 않겠습니다...

고록... 다신 이렇게 쓰지 않을 테야...

마감 급해서 잘라먹은 후일담 +

아나렉샤는 소위 때린 걸로 강등 먹고 중위로 내려가지만, 가르강튀아 반파+제라스 내부 조직 전멸 덕에 탈 가르강튀아를 (드디어) 성공하고 솔레크를 관할하는 함선으로 이동하게 됩니다. 유아기~청소년기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에서 제국 파견 교사로 근무하게 되는데요, 반쯤 상주직이라 솔레크 시에서 외박도 가능하다고 하네요... 콘스탄틴을 만나기 위해 매일 마을로 가겠지요...

사실 교사는 표면적인 것이고, 중간에 연 두인하고 만나서 저항군이 필요할 때 정보를 제공하는 스파이로 돌아섭니다. 코스챠를 다시 만나러 돌아왔을 땐 이미 아나렉샤가 위와 같은 신변정리를 끝냈을 때일 거예요.

제가 시기를 많이 놓쳤다는 생각도 듭니다.

저희 둘 다 정신이 없어졌네요. 여유로우실 때 어떤 답이든 편하게 해주세요..

고록은 마지막 페이지니까.. 분량....... 너무... 부담가지지 말아주세요 제가 좋자고 쓴 엔록이니까요...

죄송해요.. 죄송합니다 콘스탄틴을 너무너무 사랑해요....

어떤 답이 돌아와도 아나렉샤는 솔레크시에 남습니다.

거절해도.. 짝사랑으로 남지 않을까요. 글을 쓰며 깨달았지만... 그녀는 콘스탄틴을 너무 사랑하네요...

 

저와 지난 기간 동안 놀아주셔서 감사드려요.

덕분에 정말 즐겁게 커뮤러닝을 마무리했답니다.

바쁜 한주 잘 마무리하시길 바랍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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